기독교를 흔히 개신교라고 부릅니다. 개신교를 영어로는 'Reformed Church'라고 쓰는데 '개혁된 교회'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두 가지의 질문이 가능해집니다: 개혁하는 교회인가?, 개혁된 교회인가? 전자는 '내가 교회를 개혁하겠다'는 의지가 명료하게 보입니다. 후자는 '교회가 누군가에 의해서 개혁되어진다'는 피동적인 의미가 보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두 가지 개념을 다 가지고 결단하고 행동하여야 교회는 비로소 하나님의 뜻대로 개혁될 수 있습니다.
'개혁하는 교회'에서 주체는 자칫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 중심의 개혁 의지를 곳추 세웠지만 이후에 사람이 그 중심에 서게 될 때가 있습니다. 때문에 '개혁하는 교회는 언제나 '개혁된 교회'라는 기치에 항상 자리를 내 주어야 합니다. '개혁된 교회'는 하나님께 개혁의 중심을 내 맡기는 것인데 그러다 보니 자칫 사람이 뒷전으로 빠지는 문제점을 가집니다. 이렇게 하면 교회는 개혁되지 못합니다.
개혁하는 교회가 가리키듯이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개혁하여야 좋습니다. 여기서 절실하게 요청되는 것은 사람이 응당 가져야 할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감히 왜곡하고 변질하거나 세속적으로 합리화시키면 교회 내에 사람의 힘이 난무하게 되기 때문이죠. 교회가 누군가에 의해서 개혁된다고 할 때 '그 누군가'는 바로 하나님이셔야 합니다. 개인의 개혁도, 교회의 개혁도, 나라의 개혁도 균형을 필요로 합니다. 개혁하려고 할 때 사람의 힘이 강하면 세속적인 추한 개혁이 되고 맙니다. 개혁되어지려고 할 때 말만 무성할 뿐 진정성 있는 신앙적 의지가 발휘되지 못하면 의미없는 개혁이 되고 맙니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단행했을 때 그는 다섯 개의 슬로건을 내 걸었습니다: 오직 성경으로, 오직 그리스도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오직 하나님께 영광!. 이 슬로건은 루터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곳추 세우는 결기를 다잡아 주었습니다. 그랬던 루터 마저도 초심을 바로 잡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개혁은 나 자신의 개혁으로부터 시작하며,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나는 빼놓고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개혁은 그 정당성을 잃습니다. 예수님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 8:34). 가정도, 교회도, 사회도, 나라도 그 누구보다도 내가 먼저 개혁될 때 개혁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 때 나 한 사람의 개혁은 다름 아니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이 한 주간 나를 변화시켜 가는,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나의 변화를 하나님께 맡기는 삶이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