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인가, 바라바인가?
(막 15:6~15)
우리는 자식이나 일, 물건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곤 합니다. 그것이 곧 나이고, 나만큼 소중하기 때문에 뗄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됩니다. 그렇게 우리는 그것들과 깊이 연결되어 살아가곤 합니다.
1)우리가 예수님을 소중히 여기게 된 과정은 단순한 고백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결단이었습니다. 주님은 나와 따로 계시는 분이 아니라 나와 하나 되신 분이며, 그 믿음은 자율적이고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2)"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 마음과 생각이 따로 노는 허황된 믿음이 아닌, 영혼 중심의 신앙이어야 합니다. '의'는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바른 도리를 의미하며,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하나로 묶어 율법의 완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입술의 고백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전인적인 신앙 고백이며, 초대교회 당시엔 목숨을 걸고 하는 고백이었습니다.
3)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이웃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신앙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인격적 관계를 오해하면 하나님과 타협하려 하거나 불손해질 수 있습니다. 참된 인격적 신앙은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하나님의 인도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4)빌라도는 아내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압력에 밀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겨줍니다. 여기서 ‘넘겨주다’라는 표현은 성만찬의 ‘넘겨받다’와 연결됩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몸과 피를 넘겨받아 고린도 교인들에게 전하듯, 우리도 예수님의 마음과 사랑이 담긴 복음을 다음 세대에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당시 바리새인들과 고린도 교인들은 형식만 따르며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는 신앙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바라바를 선택할 수 있기에, 마음과 중심이 누구를 향해 있는지 늘 점검해야 합니다.
5)바라바는 유대인에게는 영웅이었고, 예수님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그들은 예수님보다 바라바를 선택했고, 이는 예수님보다 소중히 여기는 그 어떤 것(돈, 권력, 명예)이 우리의 신앙을 흔들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예수님과 바라바 사이에서 그때그때 흔들리기도 합니다. 바라바는 예수님을 무시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며, 우리는 그것을 바로 보아야 예수님을 바로 볼 수 있습니다.
【삶에 적용】
1)바라바는 일반적으로 소중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적 중심을 흔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진정 가치 있는지 점검합시다.
2)당시 유대인들은 바라바를 선택했지만, 우리는 흔들림 없이 예수님을 선택하고, 그 믿음을 끝까지 지켜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