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실명자는 갑자기 앞을 보지 못하게 되어 심리적 절망감이 큽니다. 40대 초반에 시력을 잃은 한 사람은 분노와 절망 속에 칩거하다가, 홀로 등산을 결단하고 한 걸음 한 걸음 산길을 올랐습니다. 마침내 정상에 이른 뒤 그는 “앞을 못 보니까 오히려 이전에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였던 것을 보고 느끼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1)노출은 ‘드러나서 보여지는 것’이고, 침잠은 ‘무언가에 젖어드는 것’이며, 몰입은 ‘주관적인 의지를 가지고서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는 원치 않았던 시각장애에 노출되어 당황했고, 좌절의 나락으로 침잠되었다가, 등산에 몰입하며 이전에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되고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2)우리는 사건 속에서 노출과 침잠과 몰입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좋고 나쁨의 기준을 육적인 시각과 물질적인 시각으로만 정하면 영적인 감각이 둔해질 수 있습니다. 외적인 것에 치중하여 얼굴과 몸매에 침잠되고 몰입하면 얼굴 지상주의로 흐를 수 있습니다.
3)산림욕이 몸을 좋은 환경에 노출시키듯이, 마음이나 영이나 신앙은 말할 나위 없습니다. 바울은 율법적 신앙에 노출되고 침잠되어 있었으나, 주님을 만난 후 올바른 노출과 침잠을 갖고 주님의 십자가에 몰입했습니다.
4)신앙적으로 커다란 실수는 내 안에서 모든 답을 찾는 것입니다. 공감은 치료효과가 있으나, “같이 울 때에는 꼭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자력 종교는 자기 안에서 해결하라 하지만, 기독교는 타력 종교입니다.
5)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삶의 중심에 자신이 있는가 하나님께서 계시는가가 기준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자신이 중심이면 신앙이 아니라 신념입니다.
6)바울에게 하나님의 지혜는 십자가 안에서 얻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작정하였고, 십자가의 지혜는 세상의 말과 지혜보다 뛰어납니다. 사순절에 그 은혜에 노출하고, 침잠하고, 몰입하여 십자가를 삶의 중심에 세우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에 적용】
#)바울이 십자가의 지혜를 얻은 것은 율법 공부의 결과물이 아니라,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경험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 전체를 노출하고, 침잠하고, 몰입하기를 바라십니다. 그 때 하나님의 지혜는 우리 삶 속에 빛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