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가장 절망적이고 불가능하게 보이는 것은 죽음의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포기하고 절망하며 죽음 이후를 막연하게 체념적으로 생각합니다. 모든 생각은 죽음 앞에서 단절됩니다.
1)마리아는 예수님의 무덤 안을 들여다보며 울었습니다. 마리아의 눈에는 예수님의 죽음만 보였고 부활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물으시며 죽음의 국면에서 부활의 국면으로 전환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여전히 이전 상황에 붙잡혀 있었고 죽음의 판을 뛰어넘어 부활의 판 위에서 예수님을 보아야 했습니다.
2)우리의 삶도 죽음의 상황과 분위기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죽음의 권세에 길들여져 체념적인 자세를 가지게 됩니다. 새장 밖으로 나온 새가 날지 못하듯이, 해방되었어도 여전히 묶여 있습니다. 빈 무덤은 죽음도 부활도 생각할 수 있는 자리이지만 사람들은 죽음만을 생각하고 부활을 보지 못합니다.
3)위기 속에서 우리는 죽음이냐 부활이냐를 선택합니다. 부활 신앙이 없는 사람은 좌절에 머물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 죽음은 극복할 대상입니다.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하며 죽음을 넘어 부활의 삶을 살았습니다. 죽음의 분위기가 아니라 생명의 분위기에 자신을 맡길 때 부활의 삶이 나타납니다.
4)죽음과 생명의 생각은 마음에서 가까이 교차합니다. 죽음 쪽으로 생각하면 포기와 절망으로 나아가고, 생명 쪽으로 생각하면 소망을 가집니다.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은 장차 부활을 바라보며 절망의 분위기를 용납하지 않고 생명의 분위기를 세워 나갑니다.
5)삶의 무게 속에서 낙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문을 닫고 있었지만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오셔서 “평강이 있을지어다” 말씀하시며 두려움을 극복하게 하셨습니다. 죽음의 분위기에 갇혀 있던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통해 소망을 보게 되었습니다.
6)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몸을 보여 주시며 담대함과 평화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시며 성령을 주셨습니다. 이는 창조 때 생기를 불어넣으신 사건과 같이 제자들을 새롭게 하시는 역사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절망과 죽음에 대하여 회복을 선포하시고 성령으로 사람의 영을 새롭게 하십니다.
7)부활과 성령의 역사는 제자들을 변화시켰습니다. 슬픔은 기쁨으로, 두려움은 평강으로 바뀌었습니다.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죽음을 이기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강건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부활의 능력과 성령의 충만은 오늘 우리를 새롭게 합니다.
【삶에 적용】
#)우리는 죽음을 공포로 이해합니다. 죽음 다음에 펼쳐지는 부활을 생각할 때 죽음은 부활로 가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