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이노센트 4세가 교황청에 들어오는 많은 헌금을 보며 베드로 시대와 달라졌다고 말하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제 교회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천국에서는 금과 은보다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가치가 중요합니다. 하나님 뜻의 결정판은 사랑이며 복음의 본질 역시 사랑입니다. 키엘 케고르는 교회가 복음의 본질을 잃어버렸다고 비판하였습니다
1)예수님은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말씀하시며 자신이 버림받고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암시하셨습니다. 본문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건물 성전이 아니라 성도들의 영 안에 세워지는 영적 성전을 말씀하십니다. 성도들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함께 지어져 갑니다.
2)유대인들은 할례와 선민의식을 귀하게 여겼고, 이방인들은 그것이 없었기에 열등감을 가졌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무시했고, 이방인들은 유대인들 앞에서 위축되었습니다. 이방인들은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사람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의 갈등을 가만히 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 둘 사이를 가까워지게 하셨고,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3)지푸라기 한 가닥은 약하지만 함께 꼬여 새끼가 되면 튼튼한 줄이 됩니다. 이방인과 유대인도 따로 있으면 연약하지만 하나 될 때 참된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서는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 되었고, 유대인과 이방인도 하나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 사이의 중간에 막힌 담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허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셨던 것은 모두가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4)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의 막힌 담이 허물어져야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로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방인은 열등감에 빠지고 유대인은 우월감에 빠져 다시 과거로 돌아갔습니다. 이미 십자가에서 끝난 문제를 다시 붙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5)십자가의 능력은 강하여 바울까지 변화시켰습니다. 하나님은 바울 속에 성전을 지으시고 모퉁잇돌이신 예수님 위에 세우셨습니다. 그때부터 바울은 예수님 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며 십자가를 지고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얻습니다. 하나님 마음으로 십자가를 바라볼 때 주님의 고난과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삶에 적용】
#)세상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귀한 사람들입니다. 세상 속에는 불평등과 소외가 있지만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서로 화목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